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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반 알고리즘 가격 책정이 기업 경영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명시적 합의 없이도 가격이 동조화되는 '알고리즘 담합(Algorithmic Collusion)'이라는 새로운 법적 리스크가 전 세계적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등 주요 경쟁당국이 관련 사건을 잇달아 제재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2025년 12월 「데이터와 경쟁」 정책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시장에서 데이터를 매개로 한 반경쟁 행위의 법적 공백과 규제 과제를 심층 분석하고 관련 법령의 현대화를 적극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AI 기반 알고리즘 가격 책정 시스템의 도입이 가속화되는 만큼, 기업으로서는 관련 법적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정비해 두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1. 배경
2. 알고리즘 담합의 유형
3. 주요 해외 사례
4. 알고리즘 담합에 대한 국내 규제 체계 현황과 전망
5. 시사점
1. 배경
AI와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제품·서비스의 가격 결정 과정에 '알고리즘 가격 책정(Algorithmic Pricing)'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실시간으로 수요와 공급, 경쟁사의 가격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경쟁 도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쟁사 간 명시적 합의나 의사 교환 없이도 가격이 동조화되는 '알고리즘 담합' 이라는 새로운 법적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담합은 '사람 간의 합의'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담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본적인 난제를 던집니다.
1. 합의의 실종: AI가 스스로 학습하여 가격을 올린 경우, 기업 경영진 사이에 명시적인 연락이나 합의가 없었다면 현행법상 '담합'으로 처벌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전통적인 공정거래법의 '합의' 요건이 사실상 공백 지대가 됩니다.
2. 알고리즘의 블랙박스: AI가 어떤 로직으로 가격을 결정했는지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렵고, 해당 가격 동조화가 경쟁 제한적 의도에 의한 결과인지 아니면 단순한 시장 대응인지 구분하기 매우 모호합니다.
3. 초고속 실시간 대응: 사람이 인지하기 힘든 짧은 시간(밀리초 단위) 안에 가격이 동조되므로, 소비자가 대응할 틈 없이 피해가 발생하고 사후 규제도 어려워집니다.
2. 알고리즘 담합의 유형
학계 및 경쟁당국에서 통용되는 알고리즘 담합의 주요 유형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네 가지 유형 중 실무적으로 주목해야 할 유형은 허브 앤 스포크형과 자율 기계형입니다. 허브 앤 스포크형은 경쟁사업자들이 동일한 제3자 알고리즘 플랫폼을 공유함으로써 직접 연락 없이도 사실상 공통된 가격 전략이 형성되는 구조로, 공정위가 현행 규제 체계의 공백으로 새롭게 지목한 유형입니다. 자율 기계형은 중간 매개자조차 없이 각 기업의 AI가 강화학습을 통해 스스로 고가격 유지 전략을 학습하는 유형으로, 현행 경쟁법상 '합의' 요건의 충족 여부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전 세계 경쟁당국의 핵심 규제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3. 주요 해외 사례
가. 미국 Topkins 사건 (포스터 담합)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에서 포스터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서로의 가격을 밑돌지 않도록 동일한 가격 재조정 소프트웨어(알고리즘)를 공통 설정하여 담합한 혐의로 형사 처벌 및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앞서 살펴본 유형 분류 중 '메신저'형에 해당하며, 알고리즘 담합에 대한 세계 최초의 형사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나. EU E-TURAS 사건
온라인 여행 예약 플랫폼 E-TURAS가 최대 할인율을 3%로 제한하는 알고리즘을 일괄 적용하자, 유럽사법재판소(CJEU)는 여행사들이 이 조치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거나 시스템 사용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이용한 것만으로도 '암묵적 동의' 로 인정되어 담합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침묵하며 시스템을 계속 사용한 행위'만으로도 담합의 공범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한 분수령적 사례입니다.
다. 미국 RealPage 사건
미국 법무부(DOJ)는 부동산 소프트웨어 기업 리얼페이지(RealPage)가 임대업체들로부터 임대료 책정에 활용되는 민감한 데이터를 제공받아 임대료를 추천함으로써 임대 조건 경쟁을 제한하고 시장지배력을 부당하게 유지한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경쟁사들 간 직접 연락 없이 공통 플랫폼(Hub)을 통해 가격이 수렴한 전형적인 '허브 앤 스포크'형 사례로, 현재 합의(Settlement)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라. 미국 Amazon Project Nessie 사건
2023년 9월 FTC와 17개 주는 아마존닷컴이 '프로젝트 네시(Project Nessie)'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자사 가격 인상 시 다른 온라인 쇼핑몰들도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들을 식별하고, 경쟁사들이 가격 인상을 추종한다면 인상된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소비자가 더 저렴한 구매처를 찾기 어렵게 하여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였다고 분석합니다. 셔먼법 제2조 및 FTC법 제5조 위반으로 제소하였으며, 해당 소송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4. 알고리즘 담합에 대한 국내 규제 체계 현황과 전망
가. 공정거래법상 이슈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공동행위가 성립하기 위해 사업자 간 '계약·협정·결의 등'의 합의 존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쟁사업자들이 명시적 합의 없이 데이터를 교환·공유하거나 알고리즘을 매개로 사실상 공통된 가격 전략을 취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합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현행 법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공백이 발생합니다. 나아가 알고리즘의 '블랙박스(Black Box)' 현상으로 인해 가격 동조화가 의도적 설계의 결과인지, 단순한 시장 적응(의식적 병행행위)에 불과한지를 입증하기 매우 까다롭다는 점도 규제의 현실적 어려움을 더합니다.
이러한 법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공정위는 2021년 12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을 통해 사업자 간 정보교환을 통한 경쟁제한적 공동행위를 부당 공동행위의 유형으로 신설하였으며(제40조 제1항 제9호), 담합의 외형상 일치가 존재하고 이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한 경우 합의를 법률상 추정할 수 있도록 하되, 중간 매개자를 통한 간접적 정보 전달도 그 적용 범위에 포함하였습니다. 다만, 동 규정이 실제 제재 사례로 이어진 적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되어, AI 알고리즘 담합이라는 새로운 행위 유형에 대한 적용 가능성과 한계는 여전히 실무적 검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나. 공정위의 향후 규제 방향
현행 심사지침은 중간 매개자에게 일방적으로 정보가 전달되기만 하는 경우 정보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어(공정위 공동행위심사기준 Ⅳ.10.나.), 경쟁사업자들이 공통된 알고리즘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를 제공하고 가격 추천을 받는 허브 앤 스포크형 담합은 현행 규제 체계 아래에서는 명확한 규율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EU 및 일본의 주요 경쟁당국은 가이드라인 등을 통하여 이러한 러브 앤 스포크형 담합도 기존 법적 기준에 적용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우리 공정위도, 해외 경쟁당국의 규제 동향을 면밀히 참고하면서 사전적 경쟁정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현대화를 통한 온라인 플랫폼 관련 규율 체계 정비, 데이터 관련 신유형 반경쟁 행위에 대한 사전 가이드라인 제시, 그리고 경쟁질서가 고착화되기 전에 이를 포착할 수 있는 상시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5. 시사점
가. 제3자 알고리즘 및 플랫폼 도입 시 법적 검토 필수화
RealPage 사건에서 확인되듯,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외부 업체의 가격 결정 소프트웨어를 무비판적으로 도입할 경우 간접적인 정보 교환 및 '허브 앤 스포크' 담합으로 엮일 위험이 있습니다. 이경우 직접 경쟁사와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면책 사유가 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하기에 앞서 반드시 다음 사항을 점검하여야 합니다.
• 해당 알고리즘이 경쟁사의 민감한 가격·거래조건 데이터와 연동되는지 여부
• 알고리즘 공급업체가 동종 경쟁사들에게 동일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지 여부
• 알고리즘 운용을 통해 경쟁사 정보를 간접적으로 취득하는 구조인지 여부
나. 플랫폼의 가격 통제 조치에 대한 명시적 이의 표명
E-TURAS 사건에서 확인되었듯이, 제3의 플랫폼이나 시스템이 특정 가격 인상이나 할인율 제한을 권고·강제할 때 침묵하며 시스템을 계속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암묵적 동의'로 간주되어 허브 앤 스포크형 담합의 공동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법한 조치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해당 플랫폼이나 시스템 이용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거리를 두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다. 컴플라이언스 체계 내 알고리즘 감사 기능 통합
기업의 준법지원 기능에 알고리즘 통제 및 감사(Algorithm Audit) 기능을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고위험 AI 시스템을 도입할 때에는 사전에 '알고리즘 영향평가(Algorithm Impact Assessment)'를 실시하여 반경쟁적 효과 발생 가능성을 진단하고, 그 결과를 문서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전 검토 이력은 추후 규제당국의 조사 시 기업의 선의와 준법 노력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라. 소결
알고리즘 담합에 관한 국내외 규제 환경은 현재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EU 등 주요 경쟁당국은 관련 집행 사례를 축적해 나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공정위가 현행 법제의 공백을 인식하고 시행령 현대화 및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 정비 작업에 착수하고 있는 만큼, 향후 규제 범위와 집행 기준이 상당 부분 변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업으로서는 자사가 운용 중인 알고리즘 가격 책정 시스템이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국내외 규제 동향과 새로운 집행 사례를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갖추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규제 변화가 현실화된 이후에 대응하는 것보다, 정책 논의 단계에서부터 흐름을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컴플라이언스 체계에 반영하는 것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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